모로코여행 - 3
길치
내가 묵고있는 모하네집의 진짜 이름은 Moha’s house가 아니었다. 이걸 알게된건 숙소에서 10분거리의 카페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려서 30분만에 겨우 찾아오고 난 뒤였다. 카페에서 주인아저씨가 “모하네는 구글맵에서 이쯤이다” 라고 찍어줬기 떄문에 잘 찾아갈 수 있겠지 생각했는데, 거리에 나와보니 모든 집이 똑같이 생겼다. 구글맵에 Moha를 아무리 검색해도 헝가리에있는 Moha 밖에 나오질않았다. 그리고 영어가 통하는 사람은 마을내에 몇 없는것 같았다. 그나마 카페에서 적어온 현지주소로 겨우겨우 물어보는데 성공했다. 터번을 쓰고있던 아저씨는 내리쬐던 그 뙈약볕속에서 자기를 따라오라며 나를 직접 숙소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한국인이냐고 물어보고 반가웠다며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마라케시와는 사뭇다른 분위기였다. 사하라의 태양아래에서 길을 헤메던 30분은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고, 그 끝에 마주한 친절은 너무나도 감사했다.
낙서같지만 모하네집의 주소이다파티마 레스토랑
이 레스토랑에 갔다가 길을 잃었다. 여기엔 식사할 곳이 거의 없다시피하다. 몇개 안되는 식당중 제일 괜찮아서 많은 관광객들이 애용하는 레스토랑이다. 동양인이라면 우선 코리안인지 물어보고 무려 한국어메뉴판을 가져다준다! 여기 가면 항상 하나씩은 한국인팀이 있었다. 그리고 가게이름의 "파티마"는 거기서일하는 사람들의 여자형제라는데, 한번도 본적이없다.(그 많은 사람들이 다 파티마의 형제라고 한다) 여러마리의 고양이가 함께 손님을 맞이한다. 이곳이 특이한건 레스토랑겸 카페인데 숙박업도 같이하고, 안에 수영장이있다. 그리고 카페 이용객도 수영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따라서 10모로코디르함(약 1100원)정도로 물놀이를 하면서 생과일오렌지주스를 마실 수 있다.
이 레스토랑은 기념품샵도 같이하는데(거의 사막의 종합상가인듯…) 여기서 스카프를 사려다가 숙소에서 돈을 조금만 들고온걸 깨닫고, 아쉽지만 내일 다시오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주인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우선 가져가란다. 오늘 사막투어에 갈거면 필요할거라고, 돈은 내일 지불하라고한다. pay later이 무슨 뜻인지 한참 생각했다. 처음보는 동양인에게 외상을 해준다고하는걸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도안되는 신뢰에 보답하려고 내일이 아닌 3시간후에 다시 이곳을 방문해서 값을 지불했다.
그리고 중학생쯤 되어보이는 파티마의 어린형제 핫산과 꽤나 친해져서 이야기를 많이했다. 오늘 사막투어에 갈건데 별을 볼수 있을까? 라고 물어봤더니 알라신께 기도하면 다 이루어진다고했다! 그리고 코란은 나이스하다고한다. 계속해서 언제든지 웰컴한다고 말해주는게 고마웠다. 숙소로 돌아와서 오후 5시 30분쯤 낙타를 타고 사막으로 출발했다. 아마 이날 별을 보지 못한 이유는 알라신께 진심으로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사막의 폭풍우
한국에서의 회사집회사집 라이프를 비웃기라도 하듯, 나의 모로코는 특이했다. 내가 읽은 대부분의 사막투어 후기에선 분명 평화롭게 낙타타고 들어가서 잘 쉬다가 별도 보고 샌드보드도 타고왔다고 적혀있었다.
낙타? 샌드보드? 별? 나는 그 대신 사하라에서 폭풍우를 만났다.
흐린날씨에 20분쯤 낙타를 타고 엉덩이가 아파올때쯤 바람이 불기시작했다. 이 바람은 강해지고, 더 강해지고, 비를 동반하고, 비는 이내 우박으로 바뀌었다. 우박과 모래가 섞여서 한치앞이 안보이고 우박에 맞은 등은 따가웠다. 우리일행은 중간에 낙타에서 내릴 수 밖에없었다. 그리고 네명이 한팀이 되어 직경 1.5미터정도의 모포천막에서 쪼그려앉아 폭풍우가 잦아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30분쯤 지났을까, 한치앞은 볼수있을 정도로 폭풍우가 잦아들었다. 하지만 낙타를 탈 수 있을 만큼은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사막의 캠프까지 남은 거리를 두꺼운 모포를 뒤집어쓰고 낙타와 함께 걸어갔다. 그렇게 사막의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마침 이날은 우리일행중 한명의 생일이었다. 우리를 인솔하던 핫산은 "Happy birthday!, welcome to desert"라는 말로 축하해주었다. 준비한 액티비티는 모두 취소되었고 사막의 밤은 한치앞도 안보이는 칠흑같은 어둠으로 뒤덮인채 빗소리만 울려퍼졌다.
모든 일정이 취소되었기 때문에 우리일행은 천막안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것 말고는 할게 없었다. 하지만 일행 중 한국인은 커녕 동양인은 내가 유일했다. 나는 영어를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화주제를 따라가기도 벅찼다. 이들은 다들 나와 비슷한 또래인것 같았고, 하나같이 2개국어는 기본으로 할 수 있었다. 한쪽테이블에서 스패니쉬로 블라블라 하다가 옆 테이블에 영어로 잠깐 리액션하고 다시 스패니쉬쪽으로 복귀하고 하는식이다. 나는 스페인어는 한글자도 모르기때문에 영어쪽 테이블 이야기만 듣고 있었는데도 미칠듯한 속도에 절반정도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스페인어를 공부해놓으면 많은 나라에서 사용할 수 있어서 영어다음으로 유용하다는것과 러시아 친구들의 열정적인 푸틴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 중 스페인어와 영어를 둘다 네이티브수준으로 구사하는 친구는 내가 소외되고있는것 같아보였는지 “그래서 한국은 어때?” 라고 가끔 나에게 물어봐주었다. 아는단어를 조합해서 겨우겨우 이야기하느라 힘들었다. 강남스타일이 무슨뜻이냐고 물어봐서 알려줬고 지금 북한과 남한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한국어로도 말하기가 힘들어서 얼버무렸다. 그들에게 내 생각을 말하고 싶었던 주제가 한두개가 아니었다. 항상여행을 다녀오면 느끼는거지만 영어공부를 더 하고싶어졌다.
밤새 비가내렸고, 다행히 다음날 무사히 숙소로 돌아왔다.
나중에 모하로부터 "비는 가끔 내리는데 이정도의 폭풍우를 본건 나도 오랜만이야"라는 말을 전해들었다. 하지만 날씨때문에 여행을 망쳤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빨간머리앤의 대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여행은 재미있다.
낯선곳을 여행할 때, 모든일은 이벤트다.